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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속의 종이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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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ocutting Date : 2003/12/01  Hit : 5316  Recommend : 1013   
 시린 하늘 서린 추억 - 연(鳶)

추억 속의 종이를 찾아서...

 

 

 

시린 하늘, 서린 추억 ─ 연(鳶)

 

 

동네꼬마 녀석들 추운 줄도 모르고 언덕 위에 모여서 할아버지께서 만들어주신 연을 날리고 있네…

Linus의 최광수가 치는 리드미컬한 기타소리가 까닭 없이 심금을 울리던 79년도.
TBC 젊은이의 가요제에서 ‘젊은이'들을 열광케 하던 바로 그 노래 ‘연’을 들을 때 유감스럽게도 난 ‘어린’꼬마였다. 어리기만 했던가. 하나밖에 없는 오빠의 말도 안 되는 심부름을 도맡아 해야하는 어리면서도 불우(?)한 처지에 놓여있었으며, 거절시엔 곧바로 어머니의 불호령이 떨어지던 전형적인
1남 4녀 집안의 어중간한 셋째 딸이었으니…

말도 안 되는 오빠의 심부름을 계절마다 하나씩 들어본다면, 봄엔 주로 어머니와 같이 캐온 쑥으로 버무린 개떡을 누워서 만화책 보는 오빠의 입에 넣어주어야 했고, 햇볕 뜨겁던 한여름엔 모기장 안팎의 파리 모기를 전담해서 쫓아야 했으며, 가을엔 찐 밤을 도맡아 속껍질까지 벗겨서 먹기 좋게 한 접시씩 발라 놓아야 했다.

특히 겨울엔 찬바람 부는 동네 공동묘지 언덕 위에서 연을 날리는 오빠를 도와줘야 했는데, 이건 나도 좋아하는 일이었다. 손재주 있던 오빠는 한겨울이 오기 전부터 동네 어디에서인가 대나무를 구해오기 시작했다. 대나무의 가운데를 벗겨서 살을 얇게 도려내고 여기저기 쓱쓱 문질러서 거칠지 않게 잘 다듬어 연에 붙일 살을 만들곤 했다.

그리고, 동지(冬至) 지나고 곧바로 어머니께서 방방마다 새로 붙이던 창호지를(가을내내 말려두었던 단풍잎을 창호지 사이에 넣어서 은은하게 보이게 하는 상감기법의 아류) 미리 꿍쳐 두었다가 잘 다려서 연(鳶 )바탕을 만들곤 했다. 풀은 변변한 게 없어서 항상 따뜻한 밥풀을 사용했고, 당시 유행하던 나일론 실은 끈기가 없다면서 푼푼이 모은 용돈으로 동네 낚시 집에 가서 낚싯줄을 사오곤 했다.

가끔 무슨 행사가 있을 때 인간문화재 분들이 만들어 날리는 그런 연들은 특수하게 제작되는 것이어서 집에서 만들 수 없는 종류의 것들이 대부분이다.

세계 최초의 연은 B.C 400년 경, 그리이스 철학자 플라톤의 벗이었던 ‘알투스’라는 사람이 만든 연이라고 하며, 동양에서는 B.C 200년 경 중국 한나라 때의 장수 한신(韓信)이 군사적 목적으로 연을 사용한 것이 최초라고 전해진다.

당시 한신은 전쟁(초한전)이 있을 때마다 연에 사람을 태워 적(適)의 성(城)을 정찰하게 하였다고 한다. 그는 또한 항우(項羽)가 이끄는 초군(楚軍)과 싸울 때에는 가죽으로 만든 커다란 연(鳶)아래 바구니를 달아 피리를 잘 부는 사람을 태운 다음, 그로 하여금 구슬픈 망향곡(望鄕曲)을 부르게 함으로서, 적병(敵兵)들의 마음을 동요시켜 항복하게 만들었다는 다소 황당한 기록도 있다.

우리나라 연에 관한 최고(最古)의 기록은 ‘삼국사기열전(三國史記列傳)’에 전해지는 대로 신라시대 김유신 장군이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사용한 기록이라 할 수 있다.

신라 진덕여왕이 즉위한 정미년(647년, 선덕여왕16년)에 비담(琵曇)과 염종(廉宗)은 여왕이 나라를 다스릴 수 없다는 구실로 내란을 일으켜 여왕을 폐위시키려 하자, 선덕여왕이 이끄는 군사들은 월성(月城)에서, 반란군은 명활성(明活城)에서 서로 대립, 10여일 동안 싸웠으나 승부가 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밤, 하늘에서 큰 별똥이 떨어지자 이것은 바로 왕군(王軍)이 패망할 징조라 하여 왕군은 물론 백성들이 크게 동요하고 있을 때, 당시 왕군의 지휘관이었던 김유신 장군이 군사를 진정시키고 민심을 수습하고자 우인(優人:허수아비 인형)을 만들어 그것을 큰 연에 매달아 불을 질러 올려 보냄으로서, 마치 별이 하늘로 솟아오르는 것같이 보이게 하였다. 그리하여 ‘어젯밤에 떨어졌던 별이 다시 하늘로 올라갔다’라고 소문을 내어 병사의 사기를 돋운 다음 반란군을 진압하였다고 한다.

또한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의하면 고려말엽(1374년) 명장 최영 장군은 탐라(현 제주도)에 거주하고 있던 목호(가축을 기르던 몽고인)의 반란을 제압하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탐라에 다다랐다. 그러나, 섬의 사방이 절벽이라 상륙할 수가 없자 난공불락의 적의 성 주변에 갈대씨앗을 넣은 연을 뿌려 그 씨앗이 자라 갈대 숲이 될 때까지 기다려 수많은 대지연(大紙鳶)에 불을 달아 화공으로 지자성(只子城)을 덮치게 함으로써 그 성을 정벌하였다는 일설도 있다. 이후 조선조에는 세종대왕(西記 1455년)때 남이 장군이 강화도에서 연을 즐겨 날렸다는 기록과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섬과 육지를 연락하는 통신수단 및 작전지시의 방편으로 연을 이용했다는 기록 등이 전해지며 특히, 영조대왕은 연날리기를 즐겨 구경하고 장려하여 서기 1725∼1776년 무렵에는 우리나라에 연날리기가 널리 민중에 보급되어 일반화되었다고 한다.

연을 날리는 시기는 대개 음력 12월, 즉 섣달에 들어서면서부터 서서히 시작하여 정초 세배와 성묘가 끝나면 본격적으로 마을 앞동산이나 갯벌에서 연을 띄우는데, 정월 대보름 수일 전에 보통 그 절정을 이루게 된다. 특히 정월 대보름날 밤이 되면 달맞이를 하고 난 후에 각자 띄우던 연을 가지고 나와 ‘액막이연’을 날리는 풍속도 있었다.

‘액막이연’에다 ‘액(厄)’자를 쓰거나 ‘송액(送厄)’ 또는 ‘송액영복(送厄迎福)’이라는 액을 막는 글을 쓴 후 자기의 생년월일과 성명을 적고 얼레에 감았던 연실을 있는 대로 모두 풀어 올려서 연실을 끊어 연을 하늘 높이 날려보내는 것으로 액을 때운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액막이연을 정월 보름에 날려보내는 이유는 여러 종류의 액막이 풍속이 대개 정월 보름에 집중되어 있으므로, 액막이는 으레 정월 대보름에 하는 것으로 인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유만공’의 ‘세시풍요’에 의하면 정월 보름에 액막이연을 날려보낸 후에, 연을 날리느라고 오랫동안 치켜 뜨고 있던 눈이 상할까봐 바람개비를 돌려서 시선을 낮추게 하여 눈동자를 바로잡는다는 좀 황당한(?) 풍속을 소개하고 있기도 하다.

연의 종류는 형태와 문양에 따라 그 종류가 1백여 종에 이르고 있으나 크게 보아 한국 연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는 사각 장방형의 중앙에 방구멍이 뚫려 있는 방패연과 날리기 쉽고 어린이들이 많이 즐기는 꼬리가 달린 가오리연, 그리고 제작자의 창의성에 따라 만드는 창작연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사실 연의 종류는 방패연과 가오리연이 전부인걸로 알고 있어도 크게 잘못되지 않는다. 실제로 하늘을 나는 연은 이것 외에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우리 오빠가 주로 만들었던 것도 방패연과 가오리연이 전부였다. 방패연은 주로 많은 공을 들였다. 허릿살과 장살을 만드는 것도 힘들었지만 한지에 붙이는 것도 잘 붙지 않아서 몇 번씩 다시 붙이곤 했다. 그리고 한지 쪼가리를 일정한 길이로 잘라서 방패연 양 밑 부분에 꼬리로 붙였는데 이는 중심이 안 맞아서 뱅뱅이 칠 때마다 조금씩 꼬리를 잘라서 균형을 맞추기 위함이었다.

방패연에 비해 가오리연(꼬리연)은 만들기가 아주 쉬웠다. 옆에서 한번 쳐다보기만 해도 만들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정사각형 마름모꼴의 한지에 살을 대충 붙이고 중심을 잡고 꼬리만 길게 늘어뜨리면 대부분 잘 날았다.

바람 부는 날은 마을 옆 논바닥 짚단 쌓아 놓은 곳에 기대어 연을 날리면 그만이었다.
햇볕은 따사롭고 짚 볏단은 바람을 막아주고 연은 하늘높이 날고…
물론 이렇게 되기까지 나는 몇 번이고 방패연이 처음 하늘에 자리잡을 때까지 연을 들고 뛰어야 했다. 이렇게 방패연이 잘 날면 나는 여분으로 가지고 간 꼬리연을 차지할 수가 있었다. 꼬리연은 웬만해선 실수없이 잘 날릴 수 있었다. 바람의 강도에 따라 얼레를 이리저리 돌려서 연이 떨어질 듯하면 감고, 너무 올라가면 줄을 풀고… 의도대로 연이 움질일 땐 정말 마음먹은 대로 하늘을 휘젓는 기분이었다.

오빠가 바람이 별로 안부는 날에 연 날리러 가자고 하면 걱정이 태산이었다. 바람 낮은 논바닥에선 도저히 연이 뜨질 않아 바람이 제법 서는 뒷동산 겸 공동묘지에 올라가 연을 날려야 했기 때문이다.

이때도 나의 역할은 물론 연이 처음 뜰 때까지 들고 뛰는 것 이었는데, 언덕 구불한 곳에서는 뛰기가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여러 번의 곡절 끝에 방패연이 하늘을 날면, 논바닥에서 보던 그것보다 훨씬 높이 나는 것 같았다. 좀 전에 뛰던 고생도 금방 잊곤 했다. 그때 어린 눈에 방패연이 저 높이 올라가면 얼마나 신기했는지. 꼭 손바닥을 내밀어 얼마나 작아졌는지 재보곤 했다. 상여집이 무서운 줄도 모르고 그 뒤에서도 여러 시간 연을 날리고 있었으니…

지금 생각해보면 피식 웃음밖에 나오지 않지만 그땐 정말 한겨울에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재미였음에 틀림없다. 다만 속상한 것은, 대보름 뒤에는 절대로 연을 마루 밑에서 꺼내지도 말라시던 아버지의 말씀이 그렇게 섭섭할 수가 없었다.

한 해 두 해 꼬마티를 벗은 후로 난 오빠가 연을 날리는 모습을 본적이 없으며 당연하게도 나 또한 연을 만져본 적이 없다.

무엇인가를 하늘에 띄운다는 것은 정말 가슴 설레는 일임에 틀림없다.

2층 건물에서 종이비행기를 접어 창 밖으로 날려보내는 짧은 시간도 신기에 가득 차서 쳐다보는 터에 하물며 연처럼 오랜 시간 하늘을 활공하는 저 파르락거리는 생동감을 지켜보는 즐거움이란…

그래서였을까. 저 이카루스(Icarus)가 밀랍으로 만든 날개로 하늘을 날아 태양까지 갔던 것이 바로 이 나는 즐거움을 못이겨 했던 것이 아니었는지.

한겨울, 게을러지기 쉬운 이 계절에 갖은 상념이 한번에 날아가 버리는 상쾌한 경험을 맛보고 싶다면 바람 부는 언덕이나 전봇대 없는 넓은 공터에서 연을 한번 날려볼 일이다.

그깟 추위가 대수랴, 짜릿한 기쁨이 있는데…

      이시름 저시름 여러가지 시름 방패연에 세서(細書)성문(成文)하여

      춘정월(春正月) 상원일(上元日)에 서풍이 고이불 제

      올백사(白絲)한 얼레를 끝까지 풀어 큰 잔에 술을 부어 마지막 전송하세

      둥게둥게 높이떠서 백룡(白龍)의 구비같이 구름속에 들거고나

      동해바닷가에 외로이 걸렸다가

      풍소소(風蕭蕭) 우낙락(雨落落)할 제 자연소멸 하여라.

─ 김수장의 사설시조 '연(鳶)'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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