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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속의 종이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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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ocutting Date : 2003/12/01  Hit : 5463  Recommend : 1194   
 시간의 역사, 달력

추억 속의 종이를 찾아서...

앞으로 나가기 위해 거슬러 올라가는
시간의 역사, 달력

어린 날의 학창시절, 졸업과 새 학기 사이에는 항상 봄방학이 있었다. 물론 지금도 그러하지만 봄방학엔
내년에 쓸 새 책을 나눠주곤 했다. 일부 과목에 따라 상급생들에게 물려받아 쓰는
책도 있었지만 대부분 새 책을 한 보따리씩 안고 집으로 향했다.
새 책이 집안에 들어서면 어머니는 항상 장롱 사이사이에 박아 두었던 철 지난 달력을 꺼내어 책표지를 손수 입혀주셨다. 차례차례 표지를 입히다가 보면 종이를 뒤집어 대어 책이름을 써야 할 곳에 ‘월, 화, 수’ 부분이 나오기도 했지만, 큰 종이가 귀하던 시절에 달력이야말로 책표지 입히는데 제격이었던 것이다.

달력의 보이지 않는 효용 중 가장 커다란 것일 수도 있고, 또 그렇게라도 친해지던 달력.
이제는 아날로그 세대들에게 추억의 장면으로만 남을 숫자 큰 달력들. 모든 것이 디지털화되어 가는 현대 사회에 달력은 과연 어디까지 와 있는 것일까.
서기 2000년 경진년인 올해는 단기로는 4333년이고 과거의 로마력으로는 2754년이며 회교력에 의하면 1421년, 마야의 일력에 따르면 5120년, 유대인력으로는 5760년이나 된다. 똑같은 해를 보고 살면서 각기 틀린 기준을 삼고 산다는 것 자체가 커다란 흥미거리이긴 하지만, 달력이 만들어진 원리를 보면 그게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 달력을 만드는 원리 또는 날짜 계산법을 ‘역법’이라고 하는데, 역법에는 대략 달의 모양변화에 의거한 ‘태음력’과 태양의 운행을 근거로 만들어진 ‘태양력’이 있다.
태음력(太陰曆)은 천체 현상과 밀접한 관련을 근거로 정밀하게 만들어진 동양의 달력으로 주로 중앙 정부에서 제작하였고, 태양력(太陽曆)은 서양의 달력으로 천체현상과 비교적 무관하며 일상생활의 편리와 간편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것이다. 역법에도 많은 종류가 있으나 오늘날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그레고리력을 쓰고 있다.

그레고리력은 율리우스력을 보완한 합리적인 역법이고 율리우스력은 고대 로마력을 교정한 것이다.
예수가 태어난 시점을 기준으로 매겨지는 ‘서기’라는 개념은 역사의 연도를 말하는데 쓰여지며, 예수탄생 이후(A.D. - anno domini 기원후)와 탄생 이전(B.C.-before christ 기원전)으로 나뉘어 일컬어지는데, 고대 로마를 건국하였던 ‘로물루스’와 ‘누마’왕이 1년을 355일로 정하고 12개월로 나누어 이를 최초로 확립한 것이 B.C.750~700년의 일이다. 이렇게 하자 1년의 길이가 해마다 차이가 나서 계절과 맞지 않는 부분이 나타나 로마황제 율리우스 카이사르(케사르 또는 시저)는 이집트를 원정했을 때 알게 된 역법으로 날짜 체계의 개혁을 단행하였다. 1년을 365.25로 정하고 4년에 한 번씩 윤달을 두는 방법으로 홀수인 달은 31로 하고 짝수인 달은 30일로 정했다. 그리고 평년을 365일로 하기 위해 2월에서 하루를 떼어냈다.
또한 이를 기념하기 위해 자신의 생일달인 7월의 본래 명칭인 ‘퀸틸리스(Quintilis)’를 없애고 자신의 생일달이라는 의미의 ‘율리(July)’로 개칭하였다. ‘부루투스… 너 마저도…’ 라는 유명한 비명과 함께 율리우스가 시해된 후 로마황제로 아우구스투스가 등극하게 되었는데, 그도 율리우스처럼 달력에 이름을 남기고자 했다. 그래서 전승기념으로 자신의 생일달인 8월의 본래 이름인 ‘섹스틸리스(Sextilis)’를 ‘아우구스투스(Augustus)’라고 변경했으며, 1달이 30일로 정해진 자신의 생일달(짝수달)이 다른 달보다 작으면 황제의 권위가 서지 않는다며 2월에서 하루를 더 떼어와 8월에 갖다 붙여버렸다. 그러자 7, 8, 9월이 모두 31일이 되는 현상이 발생되었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8월 이후에는 짝수인 달을 31일로 정했다.

율리우스력은 서양에서 16세기말까지 쓰였는데 실제 태양년과의 차이가 누적되어 사회적 문제가 야기되는 등 역법 체계의 개선이 요구되었다.
이는 1년이 365.2422일임에도 이보다 0.0078일을 길게 책정한 율리우스력의 문제점으로, 1년에 11분 14초나 더 가게 되어 128년마다 하루씩 더 길어지게 되는 모순이 생겨났기 때문이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그레고리 13세는 1태양년의 길이가 실제와 거의 같아지도록 윤년의 횟수를 조정하였는데 서기 년도가 4로 나누어지는 해는 윤년으로 정하고 동시에 100으로 나누어지는 해는 평년으로, 다시 400으로 나누어지는 해는 윤년으로 정했다. 이같은 원리에 의해 2월말에 1일의 윤일이 더해진 해를 윤년이라고 한다. 이런 방식으로 400년간 윤년을 1백 회 두던 규칙을 97회로 고쳤다. 이렇게 하면 1태양년의 길이가 365.2425일이 되어 실제 길이와 거의 유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다만 이 그레고리력에도 3300년만에 1일의 차이가 생기므로 이를 보정해 주어야만 하는 것이 불합리한 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그러나 사실, 이와 같은 내용이 기재된 달력은 전혀 보질 못했다.

달력은 달력으로서의 역사적 사명만 다하면 되는 것이기에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달력의 사명이란 사회적 약속 날짜를 기록하여 기억하는 것이고, 실생활에 유용하게 사용되어야 하는 것이다. 달력의 기능은 단순히 날짜만 헤아리기 위함만은 아니다.
1월이면 겨울을, 8월이면 여름을 떠올릴 수 있는 것은 1년이라는 주기가 사계절의 변화에 대응하기 때문이다. 기상이나 농사 등에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바로 기후와 절기이다. 이 기후와 절기가 그대로 달력에 나타난 시절이 있었다.
가끔 전원일기에 나오는, 농촌 시골집의 흙바람 벽에 국회의원의 사진이 정면에 크게 걸리고 그 양옆으로
6개월씩 나뉜 한 장 짜리 달력이 그것이다. 맨 밑 부분엔 절기의 설명에서부터 볍씨 파종시기까지 자세히 나와 있어서 농사에 크게 도움이 되리라 하고 작성한 모양이었는데 사실 농촌 사람이라면 다 아는 내용이긴 펌었다.

어머니께서는 이 한 장 짜리 달력을 못마땅하게 여기셨다. 실내 인테리어 관계상 안 붙이자니 좀 서운하고 풀로 붙이자니 다음에 떼어내서 책표지 입힐 수가 없어서 늘 앞정을 구해다가 박아놓곤 했었다. 또한, 연말이 되면 할 일없이 은행에 왔다리 갔다리 하시며 같은 달력을 두세 개씩 얻어오기도 하셨고, 신정이나 구정 때면 집에 오는 누이들도 회사이름 선명한 달력을 몇 개씩 가져오곤 했기 때문에 달력은 둘둘 말린채로 장롱 옆 빈 공간에 차곡차곡 쌓여 있기 일쑤였다.
여느 노트종이와는 달라서 달력 용지로 딱지를 접으면 가운데가 볼록하고 힘이 좋아서 상대의 공격에 잘 넘어가지 않아 어머니 몰래 딱지를 접곤 했는데, 그러다가 들키면 급한 대로 달력뭉치로 맞곤 했다. 달력으로 맞아보면 물론 알겠지만, 소리만 요란하지 하나도 안 아픈게 달력의 또 다른 매력이다.

더 이상 달력으로 책표지를 입히지 않아도 될 나이가 됐을 무렵, 달력은 어느샌가 흔해지기 시작했다.
커다란 숫자로만 만들어지던 관례에서 벗어나 풍속화에서부터 외국의 어느 해변, 유럽의 이상한 성(城)까지 참으로 다양한 모습으로 제작되었으며, 야릇한 포즈의 외국여자 모습들도 과감하게 음식점과 대포집에 나붙기도 했다.

이즈음에 또 다른 형태의 달력이 등장했는데 그것은 가끔씩 만화책에서 세월이 후딱 지나는 것을 표현할 때 자주 나오는 하루하루 떼어내는 일력이 그것이다.
대체로 한복 입은 여자가 절을 하며 생글 웃는 모습을 배경으로 가진 손바닥만한 '일력'은 포목점이나 한복집에서 선호하는 업체
홍보 방식이었는데. 최근에는 암자나 한약방 등에서도 많이 쓰이고 있다. 매일 보는 달력에 비해 일력은 굉장히 신선한 느낌이 들었고 아침에 누가 먼저 떼어내는가 하는 경쟁이 일기도 했었다.
또한 어느 일력에는 ‘오늘의 명언’ 등이 있어서 한번씩 쳐다보며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도 있어 좋았으며 그 명언만큼이나 휴지가 귀했던 시절에 화장실에서 급한 대로 휴지대용으로 쓰기에 좋았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일력의 커다란 단점은 아무래도 딱지를 접을 수 없다는 것과 며칠 묵히면 날짜를 제대로 알아챌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단점 때문은 아니겠지만 아무튼 요즘에 일력이 흔치 않은 것은 사실이다.

폐허가 아닌 이상 어느 집에나 또 어느 방에나 달력은 있을 것이다.
달력이 꼭 종이로만 만들어져야 하는 규칙이 없는 이상 별 희한한 종류의 달력이 있게 마련이다. 나이든 사람이 선호하는 숫자 큰 달력에서부터 하루하루 바꿔 달아야 하는 은행의 일력판, 심지어 오십 년간의 달력이 나오는 열쇠고리도 있고, 판촉용의 각종 아이디어 상품까지 합하면 달력의 종류는 실로 헤아리기가 어렵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달력을 가지고 다닌다. 웬만한 휴대전화기에 달력은 기본으로 떠있게 마련이고, 시선을 아무 곳에나 돌려도 달력은 쉽게 눈에 들어온다. 더 이상 들판의 벼 익는 것을 보고 날짜를 짐작하던 그 시절이 아닌 것이다.

저널리스트 ‘던컨’은 그의 책 ‘캘린더’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달력은 인류의 위대한 투쟁 중의 하나라고.

위대한 투쟁의 산물이 달력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하루 하루가 어제와 다르게 변해가는 전 인류적 상황에서
달력을 받자마자 자기 생일날에 동그라미 치며 마냥 기다리던 ‘아날로그적 발상’이 몹시도 그리운 시점이다.

분 초 단위로 나누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많은 도시의 현대인들에게,
비오던 날 떼내는 걸 잊어 몇 장씩 묵혔던 그 시절의 일력 한 매를 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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