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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외관계

대외정책의 기조

지난 40여년간 인도의 외교정책을 지배해 온 기본적 특징은 네루외교노선에서 시작된 비동맹주의와 균형주의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외교기조는 인도가 처한 특수한 외교, 안보환경에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는데, 광대한 국토와 복잡한 사회적 구조는 국가 단결을 독립초기의 최대의 관심사로 만들었으며, 따라서 대외정책 선택에 있어서 어느 한쪽을 편중하는 결정을 내릴 수 없는 내부적인 제약요건이 있었다.
 
또한 인도 대륙 내 여타 국가의 정세변동은 인도의 안정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 인도는 강대국세력의 인도 대륙 침투를 적극 저지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며, 이것이 곧 균형주의와 비동맹주의로 나타난 것이라 할 수 있다.
냉전 이후, 국제정치질서 변화에 따라 인도는 미.러.중.서구 등 주요국가들과의 관계를 균형되게 발전시키는 실리중심의 실용주의 외교성향을 보이고 있다.
  • 비동맹주의
  • 인도는 독립 당시부터 패권주의 반대, 군사동맹가담 반대, 국제분쟁의 평화적 해결 및 모든 국가와의 우호 관계수립 등 비동맹회의가 채택한 것과 유사한 기본이념을 대외정책의 기본노선으로 표방하였다. 이러한 기본입장에 따라 인도는 비동맹운동의 창설을 주도하여 왔고, 비동맹회의 창설 이후에는 비동맹주의를 대외 정책의 기조로 삼아 왔다. 그 이유는 미,소 양진영중 어느 한쪽을 택할 경우 이는 인도의 독자적 행동을 제약하고, 나아가 인도 대륙에서의 현상 유지에 어려움을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한 때문이다.

  • 균형주의
  • 정치적으로 서구식 의회민주주의, 경제적으로는 사회주의적 계획경제를 구상하고 있던 네루 수상은 동, 서 양진영간 적절한 균형을 유지함으로써 최대의 실리를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균형주의는 비단 대미, 대소 관계뿐 아니라 대비동맹관계, 대아랍관계, 대서구관계에서도 뚜렷이 나타난다.
  • 인도는 비동맹회의 창시국의 하나이며, 비동맹의 주도국으로서 국제정치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바 있다. 인도는 인디라 간디여사 정권하에서 소련의 경제.군사 원조를 배경으로 친소적 경향을 보였으나, 그후에는 경제문제로 인하여 미.일 등에 기울어진 친서방적 대외정책을 구사히얐디.
  • 인접국가와의 우호관계 증진은 인도 대외정책 기조의 하나로서 이들과의 협력, 관계증진에 중점을 두고 있으나, 파키스탄과의 국경분쟁, 방글라데시와의 갠지스강 용수문제, 스리랑카 내 인도인의 지위 문제 등으로 이들 국가와의 관계는 가끔 긴장상태를 보였다.
  • 라오 정부가 등장한 '91년 7월 이후 인도는 친서방 정책을 통한 외채위기 등 경제문제 해결에 주력하고 있다. 따라서 이스라엘과 수교하였고, 남아공화국과의 관계도 개선되었다.
  • 2000년 미국과의 상호정상방문, 러시아, 일본 정상의 인도방문 및 인도대통령의 중국 및 서구 방문등 주요국가들과의 정상교류를 통한 다각적 대외관계를 추구하고 있다.

   다른나라와의 관계

  • 인도-파키스탄 관계
  • 독립과정에서의 파키스탄의 분리독립, 3차례에 걸친 전쟁, 현안문제로서의 카시미르 문제는 1971넌 휴전당시의 상태를 유지하고 관계 정상화 및 협력증진을 유지한다는 Simla 협정(1972년)을 체결하는 등 관계개선을 위해 노력하였고, 파키스탄-미국 관계가 소원해짐에 따라 미국의 대 파키스탄 무기제공도 감소되어 인도-파키스탄 관계는 큰 마찰없이 유지되어 왔다.  
  • 그러나 1979년 아프간 사태에 다른 미국의 대 파키스탄 무기제공 문제로 인도.파키스탄 관계가 다시 알력관계를 보였다. 인도가 미국의 대 파키스탄 무기제공은 인도아 지역에 초강대국 간의 경쟁을 초래하고, 인도.파키스탄 간의 군사균형을 파괴한다는 이유로 반대 입장을 내세우자, 파키스탄은 부전조약 체결을 주장하였는 바, 1982넌 1월 양국 외무장관간에 동 조약 체결문제 협의를 위한 회담이 있었을 때 인도측은 평화 우호협력 조약 체결과 인도.파키스탄 합동 위원회 설치를 제의하였다.
  • 특히 1984. 6. 황금사원에 대한 군대진입 이후, 펀잡사태에 관련된 시크 분리주의자들이 파키스탄내에서 훈련을 받는 등 파키스탄의 지원을 받았다고 인도 정부가 비난함으로써, 양국관계가 악화되기 시작하였으며, 1984. 4. 인도 항공기를 납치한 시크 극렬분자들에 대하여 파키스탄 관리가 Lahore 공황에서 무기를 주었다는 사건과 1984년말 파키스탄내 시크지역에서 인도 순례자들이 해외거주 시크교도들로부터 폭행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함으로써 양국관계는 더욱 악화되었다.
  • 1986. 12 및 1987. 2 양차에 걸친 양국 정상회담에도 불구하고 양국간 관계개선에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특히 1987년초부터 실시된 인도의 대규모 군사훈련(Brasstacks 훈련) 및 이에 대한 파측의 군사적 대응, 1987넌 중반 이래 수차에 걸친 파키스탄군의 인도 Siachen 빙하지역 공격이 긴장상태의 직접적 원이 되고 있으며, 파키스탄 측의 핵무기 개발 움직임, 미국의 대 파키스탄 AWACS 임대 및 첨단무기 제공, 1987년말 미국의 대 파키스탄 6개년 원조(40억불) 승인등은 인도국민에게 커다란 불안감을 야기시켜, 상호 누적되고 있는 불신감 속에서 양국간 이미 합의한 협의 창구 활용이나 협력기획조차 이행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 1990. 1. 인도관할 카시미르 지역내 회교도들이 인도로부터의 분리독립을 요구하며 격렬한 시위를 전개, 이를 진압하려는 인도 보안군과의 유혈충돌로 수백명이 사망함. 인도는 이 소요사태가 파키스탄측의 배후조종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시위자 현장 사살 명령하달(1990. 1), 대규모 병력의 국경이동 배치(1990. 2) 및 국경봉쇄(1990. 5) 등 강경대응함으로 인도.파키스탄간 군사긴장이 고조된 바 있다.
  • 이후 인도.파키스탄 양국은 정상회담(1990. 11, 몰디브 개최 SAARC 정상회담), 외상회담(1990. 4, 뉴욕), 6차에 걸친 외무차관회담 등을 통해 긴장 해소 노력을 경주함. 그 결과, 제4차 외무차관 회담시(1991. 4) 상호 영공 불가침 및 군사훈련 사전통보 협정에 서명하고, 제 6차 외무차관 회담시(1992. 8)에는 화학무기의 개발, 생산, 배치 및 사용을 금지하는 공동성명에 서명하는 등 일련의 성과를 거두었다.
  • 제 6차 인도.파키스탄 외무차관 회담이후, 1992.10. 파키스탄인 인도내 피살사건(Zia 및 Habibullah 사건) 발생, 1992. 11. 인도.파키스탄 양국간 Siachen 빙하지역 철군문제를 협의하는 국방차관회담(제6차) 결렬, 1992.12 Babir 회교사원 파괴, 1993. 3, 봄베이 연속 테러사건등으로 인도.파키스탄 관계 긴장이 고조되었으나 1993. 9 무장그룹에 의한 카시미르 지역내 하즈라트발 회교사원 점거사태의 평화적 해결, 1993. 10, 파키스탄의 유엔에서의 카시미르관련 인권문제 상정철회 및 파키스탄 신정부 수립이후 대화재개 원칙 표방에 따라 대화재개 분위기 조성, 1994. 1, 제7차 인도.파키스탄 외무차관 회담이 개최되었다.
  • 그러나 제7차 회담에서 파키스탄측은 카시미르 문제의 해결이 대화 계속의 전제라는 점을 주장하였고, 인도측은 인도의 영토보존과 직결되는 문제에서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 카시미르 문제에 대한 양측의 근본적 차이점을 분명히 함으로써 회담은 인도.파키스탄 관계개선 계기를 마련치 못하였다.
  • 인.파 외무차관회담은 1994.1 개최된 이후 3년여만인 1997.3.28-30 뉴델리에서 개최되었으나,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했다.
  • 1997.5.12 몰디브 개최 제9차 SAARC 정상회담 계기에 인도의 Gujral 수상과 파키스탄의 Sharif 수상이 정상회담을 갖고, 차기 외무차관회담 일정(97.6 이슬라마바드)에 관하여 합의
  • 1997.6.19-23 이슬라마바드에서 개최된 인.파 외무차관회담에서 인.파간의 현안을 다음 8개 의제로 정리하고 실무그룹을 구성, 협의키로 합의
  1. 평화,안보 및 신뢰구축 조치
  2. 자무.카시미르(Jammu & Kashmir)
  3. Siachen 빙하지역 경계선 획정 문제
  4. 툴불 지역 해운 프로젝트(Tulbul Navigation Project)
  5. Gujarat주의 Sir Creek강 경계획정 문제
  6. 테러리즘 및 마약 거래 문제
  7. 경제통상 협력
  8. 인적 교류 증진
  • 1997.9.15-18 뉴델리에서 개최된 인.파 외무차관회담에서 인도측이 자무.카시미르 의제에 관한 별도의 실무그룹 구성을 거부함으로써 동 회담은 별 성과없이 종료되었다.
  • 1998.7.29 콜롬보 개최 제10차 SAARC 정상회담 계기에 인도의 바즈파이 수상과 파키스탄의 샤리프 수상이 정상회담을 가졌으나, 자무.카시미르에 관한 별도 실무그룹 구성 문제에 관한 견해차를 좁히지 못했다.
  • 1998.9.23 유엔총회 참석 계기에 바즈파이 수상과 샤리프 수상은 정상회담을 가진 바, 양측은 평화, 안전 및 신뢰구축 조치와 자무.카시미르 등 2개 의제에 관해서는 10월 이슬라마바드 개최 외무차관 회담에서 다루기로 하고 나머지 6개 의제에 관해서는 11월 뉴델리 개최 의제별 실무그룹회의에서 다루기로 합의.
  • 1998.10.16-18 이슬라마바드 개최 인.파 외무차관회담에서 인도측은 카시미르 통제선(LoC)의 현상 변경은 양자간 대화를 통하여 해결한다는 Simla협정(1972)에 따른 카시미르 문제 해결을 주장한 반면에, 파키스탄은 인.파 양국군의 카시미르 철수 및 주민투표 실시를 권고하는 유엔 안보리 결의(1949)에 따른 해결을 주장했다. 요컨대, 인도측은 카시미르 통제선의 현상 유지를 희망하며, 파측은 카시미르 통제선의 현상 변경을 희망하는 바, 이를 위하여 파측은 제 3자 중재개입을 주장하나 인도는 제 3차 개입을 반대했다.
  • 1998.11.5-13 뉴델리에서 개최된 6개 의제별 실무그룹회의에서 양측은 어부 및 선원 석방, 뉴델리-라호르간 버스 운행, 파키스탄의 잉여 전력의 대인도 수출, 사증제도 완화등에 관하여 합의하였으나 그밖에 특별한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 1999.2.20-21간 라호르에서 인.파 양국 정상회담이 개최되고 캐시미르 문제를 비롯한모든 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강화하기로 하는 '라호르 선언'이 서명되어 1972년 Simla 협정이래 양국간 중요한 합의도출을 이룩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 그러나 1999.5.25 LoC를 월경, 캐시미르의 Kargil지역에 파키스탄군이 침투, 이의 축출을 위하여 인도공군이 공습을 하는 Kargil 사태가 발생함으로써 양국관계는 다시 악화되었으며, 1999.7.17 Kargil사태 종료이후에도 냉각상태가 지속되었다.
  • 2000.9.6 무샤라프 파키스탄 행정수반은 유엔 천년 정상회의 연설에서 인도와 언제, 어느때, 누구와도 대화할 용의가 있다고 제의 하였으나, 인도측은 대화를 위해서는 말이아닌 행동으로, 테러행위를 중지하는등 대화 분위기 조성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였다.
  • 2001.2 인도 구자라트 지진사태를 계기로 파키스탄의 대인도 구호품 제공, 바즈파이 총리와 무사라프 행정수반간의 직접 전화통화 실현 등의 긍정적 움직임이 있었으나, 양국간 대화재개를 위한 직접적인 돌파구는 아직 마련되지 않고 있는 상태이다.
  • 인도-방글라데시 관계
  • 인도는 파키스탄과의 전쟁을 치루게 될 정도로 방글라데시의 독립에 깊이 관여하였고, 방글라데시가 소련보다는 미국 및 중국과 우호관계를 유지해 왔으며, 무슬림이 우세한 국가임에 비추어 방글라데시와의 우호관계 유지를 중요시하여 왔다.
  • 그러나 방글라데시의 국내정세 변동, 방글라데시 국민의 동국주재 인도인에 대한 도발적 행동, 방글라데시와의 인도 국경지역인 New Moore Island에 대한 영유권 문제, Farakka 댐을 통한 수자원 공동이용 문제 등으로 양국간에 마찰이 있으나, 인도는 최대한 문제를 무마시키면서 우호관계를 유지하려는 태도를 보여왔으며 또한 방글라데시에 매년 상당액의 원조를 제공하고 있다.
  • New Moore Island 는 벵갈리 간지스강 하구 해안에 위치한 12㎢ 정도의 토사 축적으로 생긴 도서인 바, 동 도서가 1974년 발견된 이래 인도측은 영유권을 주장해 왔고, 방글라데시측은 1979넌 처음으로 영유권을 주장한 후 수차 이를 주장해 왔다. 1977년 간지스강 공동이용을 위한 협정(Farakka 협정)을 체결했는 바, 동 협정이 1982. 11월 만료되어 이의 갱신을 위한 양국회담이 수차 개최되어 왔으나, 방글라데시측은 네팔지역에 댐을 건설, 수자원량을 증대시킬 것을 주장하고 있고, 인도측은 네팔을 관여시키지 않고 운하를 건설할 것을 주장하였다.
  • 이와 같이 양국이 현안문제를 타결하지 못하여 오던 가운데, Ershad 방글라데시 대통령이 1982. 10. 인도 방문을 통하여, 양측은 Farakka 협정 연장문제, New Moore 섬 문제, 해안국경선 확정문제의 해결방안에 대하여 합의하였으며, 양국은 합동 경제위원회도 설치하였다.
  • 1984년중 양국은 국경지역에서의 철조망설치 문제 때문에 방글라데시측이 인도측에 이의를 제기하였으며, 또한 1984. 4에 양국 국경지역 군병력간에 총격전이 발생하여 긴장상태를 나타냈으나, 1998.12 인도.방글라데시 양국은 철조망 설치문제에 관하여 기본적인 합의에 도달함으로써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대화를 모색하고 있다.
  • 1997 양국간 주요 현안사항이던 강가(갠지즈)강 영유권 분쟁해결로 양국은 건설적 우호 협력관계 증진에의 장애가 해소되었으며 1999.6. 바즈파이 총리가 다카를 방문, 캘커다-다카간 버스노선을 공식 개설함으로써 양국관계는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였다.
  • 2000.4. 양국은 새로운 버스노선을 추가 개설하고, 조기에 양국간 철도 수송도 개시하기로 하였으며 2000.8. 뉴델리에서 개최된 양국 외무차관회담에서 양국간 월경 테러리즘에의 대처를 위한 협력을 강화 하기로 합의하는등 양국관계는 원만한 발전양상을 보이고 있다.
  • 인도-스리랑카 관계
  • 스리랑카 북쪽에는 인도 남부지방인 타밀과 종교적 및 문화적으로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는 약 250만명의 타밀 소수민족이 거주하고 있으며, 이들 중 일부는 스리랑카 국민의 다수를 점하고 있는 Sinhalese로부터 분리 독립하여 타밀인 국가의 수립을 주장하고 있는 바, 동 타밀문제 해결을 둘러싸고 양국간에 긴장이 계속되어 왔다.
  • 이와같이 스리랑카 타밀 소수민족의 분리주의 운동을 둘러싸고 스리랑카와의 관계가 악화되던 중 1987. 5. 스리랑카 정부의 타밀 게릴라 밀집지역인 Jaffna에 대한 대규모 공세로 다수의 타밀인 사상자가 발생하자 인도정부가 1987. 6. 4. 식량, 의약품을 Jaffna에 투하하는 공수작전을 전개, 양국관계는 급속히 악화되었다.
  • 양국정부는 외교적 공방전 끝에 6.15 인도 구호품의 전달방식에 합의, 구호품 전달이 실현되었고, 이어 인종분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한 적극적 외교 교섭이 전개되었다.
  • 동 교섭 결과 1987. 7. 인도.스리랑카간 평화협정이 극적으로 체결되어 인종 분규 해결과 평화회복의 계기가 마련되었다.
  • 동 협정은 스리랑카의 주권 및 독립보전하 동.북부 타밀 주거지역에 대해 광범위한 자치권을 부여하는 대신, 게릴라의 무기반납을 통한 테러행위 금지를 골자로 하고 있으며, 인도가 Guarantor로서의 역할을 수행키 위해 인도군을 스리랑카에 파견, 스리랑카 정부군과 함께 타밀 게릴라 무장해제 작전을 전개하였으나, 게릴라의 완강한 반항으로 교착상태에 빠졌었다.
  • 그러나 인도정부는 타밀 게릴라 무장해제를 완수키 위해 계속 노력하는 한편, 각종 타밀단체들과 막후 협상을 병행, 게릴라의 무기 반납, 전후 복구사업, 자치권 내용등에 관하여 교섭하였다.
  • 1989. 1. 취임한 "프레마다사" 스리랑카 대통령은 1989. 11, 좌익 반정부 단체(JVP) 진압, 1990. 3. 인도평화유지군(IPKF)의 철수 실현에 성공한데 이어 종래의 대화 자세에서 군사적 진압방침으로 선회, 동북부지역을 거의 평정하였다.
  • 1990. 6. 타밀족 분리독립단체인 타밀엘람해방호랑이(LTTE)가 정부측과의 휴전합의를 파기, 군기지를 공격함으로써 내전이 재발되었다. 타밀족 난민이 인도남부 타밀나두주로 대규모 유입되는 사태가 발생, 타밀족 난민의 조기귀환 문제를 둘러싸고 양국간 외교문제로 비화되었으나 1992. 1, 양국 외상회담에서 타밀난민의 본국 송환에 합의하였다.
  • 그러나 IPKF 철수촉진을 위한 LTTE에 대한 스리랑카 정부의 무기 제공설, 인도 라디오 방송 특파원 추방 등으로 양국관계가 악화, 1991. 11. 스리랑카에서 개최키로 한 제 6차 SAARC 정상회담이 인도측의 비협조로 연기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하였으나, 1998.12. 스리랑카 대통령이 인도를 방문하여 우호를 다짐으로써 양국 관계의 확대발전에 기여하였다.
  • 2000.4. LTTE 와 스리랑카 정부군 사이의 전투발발로 인도정부는 동사태에의 대처에 있어 어려움에 직면하였으나, 바즈파이 정부는 타밀나두주의 NDA연정 참여세력으로 부터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LTTE에 대한 지지입장을 취하지 않았다.(그러나 강력한 반 LTTE 입장을 취할수도 없는 상황임)
  • 2000.6. Jaswant Singh 외무장관이 콜롬보를 방문하여 인도가 스리랑카내 타밀족의 독립을 지원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강조하는 한편, 평화적 분쟁 해결과 타밀 소수민족의 권익보호를 희망하였다.
  • 2001.2 Chandrika Kumaratunga 스리랑카 대통령이 방인, 타밀 소수종족 권리확대문제, 타밀반군 단체(LTTE) 와의 대화문제, 자유무역협정 이행문제 등을 협의하였다.
  • 인도-네팔 관계
  • 인도는 네팔의 인접국일뿐 아니라 중국과의 사이에 위치하고 중국과 친밀한 관계에 있어, 네팔과의 우호관계를 중시하고 있다.
  • 그러나 네팔은 1962년 인-중 전쟁이후 양 강대국간 대립관계를 이용, 등거리 외교정책을 폄으로써 인도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데서 탈피, 독자노선 관철을 시도하였다.
  • 인도는 최근 수년간 네팔이 지나치게 친중국 접근을 시도하자 1989.3. 인.네팔간 통상 , 통과협정 종료를 선언, 네팔의 대외교역 통로 15개중 13개를 폐쇄, 경제압력조치를 취함. 이어 89. 7월에는 캘커타 유류 하역항 폐쇄 조치로 네팔내 유류파동을 초래, 경제난이 극심하였다.
  • 동 사태로 양국간 긴장관계가 지속되던 중 90. 6월 바타라이 네팔수상의 인도방문 및 90. 8월 싱수상의 네팔방문을 계기로 협상이 진전, 어느 정도 정상화를 이루었으며 인도의 바즈파이 내각의 SAARC 회원국과의 관계증진 정책에따라 양국관계 전망은 밝은 편이다.
  • 양국관계는 다시 1999.12. 카트만두발 인도여객기 납치사건으로 급격히 냉각되었으나 2000.5. 네팔 외무장관의 방인, 인도 외무차관 네팔 방문 및 2000.7. Koirala 네팔 총리의 방인으로 양국관계가 회복되었다.
  • 양국은 민감한 문제인 1950년 체결한 국경조약 재검토(동조약상 안보규정등) 및 국경확정 문제에 대해 외무차관간 협의를 갖기로 하였으며 양국간 출입국 절차 운영문제를 개선하기로 합의하였다.
  • 인도-부탄 관계
  • 부탄은 1949. 8. 인도와 체결한 우호조약을 기반으로 하여, 인도와 특수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외교관계에 있어서는 인도 정부의 권고에 따르도록 되어 있음). 그 결과 부탄은 종래 인도 이외의 나라들과 개별적인 외교관계 없이 모두 인도를 통해서 그 대외관계를 처리하여 왔다.
  • 부탄 국왕은 1년에 1회 이상 인도를 정기적으로 방문하여 양국관계 문제를 협의하는 등 양국간 긴밀한 유대 관계가 지속되고 있다.
  • 인도-미국 관계
  • 미국의 인도 독립 지원 및 양국의 정치체제 유사성으로 인하여 독립직후에는 상호 의존관계에 있었으나, 대외정책의 차이로 대체로 원활치 않은 상태를 유지해 왔다. 즉 1) 인도의 군사 블럭 불가담 원칙, 인도의 중국 승인, 미국의 대베트남 정책에 대한 인도의 비난, 2) 인-파 전쟁시 미국의 파키스탄 지지, 미국의 대파키스탄 무기제공 등이 양국간의 마찰요소로 작용하여 왔다.
  • 1987.10. "간디" 수상이 방미, 주요 국제문제에 대한 양국간의 기본 입장의 차이로 야기되었던 소원한 관계를 어느정도 좁히고, 첨단 방산기술 도입 등 제반 실질협력 증진 노력에 합의함에 따라 양국관계는 정상화를 향해 일보 전짐하였다.
  • 냉전 종식이후, 인도는 경제개혁을 최우선 과제로 추진하면서 미국.서구 및 러시아와의 전면적 관계 재조정을 꾀함에 따라 종래의 미.중.파와 소.인의 대결구도가 퇴색하면서, 미국의 대인도.파키스탄간의 균형유지를 기조로 인도.미국간 경제 및 과학기술 협력관계를 통한 실질적 협력관계가 크게 증진되었다.
  • 그러나 미국이 주도덕으로 추진하는 핵비확산문제(NPT) 및 지역분쟁 억제의 일환으로써 서남아지역 핵 및 미사일 확산방지 문제에 있어 인도는 미국과 뚜렷한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인도는 핵보유국을 포함하는 범세계적 핵비확산을 목표로 하지 않는 한 기본적으로 NPT 및 CTBT에 동조할 수 없다는 입장이며, 또한 현실적으로 파키스탄, 중국으로부터 핵위협이 존재하는 한 핵 옵션을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 이에 더하여 핵무기 보유문제에서 불투명한 입장을 취하는 파키스탄에 대해 F16기의 판매를 보류한 Pressler 법안을 수정하는 Brown 수정안이 1995.10. 미 의회에서 통과됨에 따라, 인도는 미.파키스탄 군사협력 관계의 부활 가능성 및 그 결과로서 서남아 지역의 안보정세 변화에 극히 민감한 의구심을 표명하고 있다.
  • 그러나 양국은 1994. 5. "라오" 인도수상의 방미 결과, 양국간 경제.통상 협력관계 강화를 재확인 했으며, 1995. 1. Perry 국방장관이 인도 방문시에 서명된 "방위관계에 관한 합의 의사록"에서 양국 정부 및 민간차원의 국방 및 방산분야 협력을 다졌다, 양국간 최대관심사인 경제협력 및 군사문제에서 광범위한 협력관계를 구축하였다.
  • 양국 관계는 2000.3 클린턴 대통령의 인도 방문과 양국간 'Vision Statement' 서명, 2000.9 바즈파이 총리의 미국방문등 양국 정상의 교환방문으로 새로운 관계 진전이 이루어지고 있다.
  • 미국 부시 신행정부도 인도와 인.미 관계의 중요성을 인정, 양국관계 진전 추세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 인도-러시아 관계
  • 소련은 인도 독립 직후 인도를 친서방적으로 생각하였으나 인도의 중국 승인, 미국 군사동맹 불가담, 수에즈운하 분쟁시 영국 및 프랑스 비난 등의 태도를 취하자 인도에 대한 인식이 변화되어 Goa 문제 및 인도-중국 전쟁에 있어 인도를 지지하였고, 1962년 미그기의 인도내 제작에 협조한 바 있다. 또한   65년 인-파 전쟁시 종전을 위한 중재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이와같이 양국간 우호관계가  증진되는 가운데 1971년 평화우호협력조약을 체결하였으며, 1971년 제3차 인-파 전쟁시  미국이 벵갈만에 잠수함을 파견하는 등 인도에 위협적인 자세를 취하자 소련은 인도를 지원하는 태도를 취했는 바 이는 인-소 관계의 긴밀화에 결정적인 작용을 하였다.
  • 인-소 관계의 긴밀화는 이와 같이 인-파관계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태도에 크게 연유하는 바, 인도는 자신이 어려운 시기에 처해 있을 때 소련만이 지원을 제공했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 그러나 최근 인-소 관계는 소연방의 붕괴와 인도의 국내경제 악화 등으로 질적인 변화를 겪고 있다. 92. 1월 정부대표단을 러시아에 파견, 구소련과의 우호협력조약 승계문제 및 경제협력  강화방안을 모색하는 한편, CIS내 중앙 아시아 5개 회교국들과 관계강화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러시아와는 인도 무기의 70%정도가 구소련제임에 따라 무기부품 조달 등 군사협력에  계속 우선순위를 두고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 인도는 전통적으로 특별한 관계를 유지해온 러시아와의 관계 복원을 모색해왔으며, 2000.10월 푸틴 대통령이 인도를 방문, 양국간 전략적 동반자 관계 선언을 발표하였으며, 방산, 원자력에너지 분야를 비롯하여 제반 분야의 협력을 강화 시키기로 하였다.
  • 인도-중국 관계
  • 중국과의 관계는 인도 대외정책의 주요 결정요인의 하나이다. 인도는 공산정권 수립시 이를 승인하였고, 중국의 티벳 합병을 묵인하였으며, 반둥 회의에서 함께 주도적 역할을 하는 등 초기에는 양국관계가 우호적이었다. 그러나 중국이 56-57년 서티벳과 중국본토 연결을 위해 캐시미르 지역의 인도 영토인 Aksai Chin 지역을 통과하는 도로를 건설한데 이어 Ladaka를 침공하는 문제로 1962년 중-인 전쟁이 발발하였다. 중-인전쟁시 중국이 점령한 Aksai Chin 지역은 Arunchal주 지역의 국경선 확정문제와 함께 국경문제로 남아있다.
  • 중-인 전쟁으로 양국외교관계는 76년까지 단절되어 왔는 바 제2차 및 제3차 인-파 전쟁시 중국이 파키스탄을 지원하고 파-중관계가 강화되어감에 따라 인-중관계는 더욱 악화되었다.
  • 이후 양국간 관계 정상화를 위한 노력이 진행되고 92. 12월 중국수상으로서는 31년만에 이붕 총리가 인도를 방문, 국경문제의 조속한 해결노력 강화 등을 내용으로 하는 공동성명을 채택함. 오랜 현안인 국경문제에 대한 조속한 합의는 어려울 것이나, 교역 및 경제협력 등 양국간 실질관계를 강화하면서 주요지역문제에 대해서도 정치적 이해의 폭을 점차 확대하는 방향으로 양국관계가 진전되었다. 현재 양국은 캐시미르 문제와 티벳 문제에 관해 상호 민감한 입장을 존중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 양국은 1999.2.부터 정부차원의 공식대화를 재개하였으며, 99년 Jaswant Singh 외무장관의 방중에 이어 Narayanan 대통령이 2000.6. 중국을 방문하였으며, 2000.7. 중국 외교부장이 인도를 방문하는등 빈번한 고위인사 교류를 통해 양국관계 증진을 모색하고 있다.
  • 2001.1월에는 리펑 중국 전인대 상무위원장이 인도를 방문하여 양국 관계 개선 추세를 촉진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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